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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허씨  12세  / 고려시대

허백(伯)

행직:  중서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2-9(中書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 /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1. 프로파일

옛 족보는 남성을 먼저 기록하고 여성을 그 뒤에 태어난 순서대로 기록했습니다. 따라서 출생순서는 실제와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시대 : 고려 세수 : 12세 향년 : 미상(未詳)
성명(한글) : 허백 성명(한자) : 許伯
성별 : 생몰년(음력) : 미상 - 1357/07/26 출생순서 : 1/4 (순서/총자녀수)
호(號) : - 아버지 :
시호(諡號) : 문정(文正) 공신(功臣) : - 군호(君號) : -
배우자 : 생몰년(음력) : 미상 - 미상 배우자 품계 : 국대부인 / 정3품(외명부)
최초 등재족보명 :

2. 파명

대파명 중파명 소파명
판도좌랑공파(版圖佐郞公派) - -

3. 과거시험

과거급제 문과 자료는 정부기록물을, 무과와 잡과 그리고 소과 자료는 구 족보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과거(대과) : 문과 등수 : 3등 / 미상명  (을과) 급제년도/왕조 : 1317년 / 충숙왕(고려) 과거종류 : 식년시

4. 관직 및 품계

관직과 품계는 행직의 경우 생전의 마지막 관직과 품계를 보여줍니다.

행직
문/무관 : 문관 (고려)
관직(행직/수직) :  품계명(행직/수직) :  품계(행직/수직) :
행직(현대) : 부총리

5. 장사(葬事) 및 묘소정보

묘소 정보는 구 족보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합장여부 : 각장
본인 : 허백(伯) 장례종류 : 매장 좌향(坐向) :
소재지(국가) : 대한민국 주소 : 황해도 (대한민국) 미상, 미상 전포 동능곡
배우자 (1번째 부인) : 동래정씨 장례종류 : 매장 좌향(坐向) : 미상(未詳)
소재지(국가) : 대한민국 주소 : 황해도 (대한민국) 미상, 미상 전포 동능곡
나의 이야기

제목 : 12세 허백(伯) / 한글 번역문

문경공 허공(珙)의 손자이며, 고려 제25대 충렬왕 대(代)에 호부산랑(戶部散郎: 호부의 산랑으로 정6품 벼슬)으로 찬성사(贊成事: 첨의부의 정2품 관직)에 증직된 판도좌랑공(版圖佐郞公) 허관(冠)의 세 아들 중 첫째 아들이다.

고려 제27대 임금 충숙왕 4(1317)년 9월 홍의손(洪義孫) 방에 급제했으며 벼슬은 정동행중서성 좌우사랑중 고려금자광록대부(征東行中書省左右司郞中高麗金紫光祿大夫)로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中書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와 집현전태학사 수국사판상서예부사(集賢殿太學士修國史判尙書禮部事)로 양천군(陽川君)에 봉(封)해졌으며 시호(諡號)는 문정(文正)이다. 정동행중서성(征東行中書省)은 고려 후기 원나라 세조가 일본을 정벌한다는 의미인 정동과 중서성(中書省: 중서문하성의 준말)의 지방 기구라는 의미의 행중서성을 결합해 만든 기구인데 정동행성이라 부르기도 했으며 좌우사랑중은 정동행중서성의 관직으로 종5품 관직이다. 정동행중서성(征東行中書省)은 일본 정벌에 실패한 원나라 세조가 죽은 뒤 본래의 목적이 없어지면서 고려의 내
정을 간섭하는 기구로 변하였다. 금자광록대부는 금자흥록대부의 후신으로 문산계 29계 가운데 제3계다.

중서시랑(中書侍郞)은 고려 시대 최고 정무기관인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정2품 관직이며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의 준말이다.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 또한 중서문하성의 종2품 관직이다. 중서문하성은 고려 시대 최고의 중앙정치기구로 조선 시대의 의정부(議政府)보다도 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다. 중서문하성의 최고직은 문하시중(門下侍中)이며 그 밑에 평장사(平章事)들과 참지정사(叅知政事), 정당문학(政堂文學),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로 구성된 재상들과 하층부인 낭사(郎舍: 정3품의 관리)이하의 관리들로 이루어졌다. 문하시중을 중서문하성의 장관급이라 하지만 업무처리 형태로 볼 때, 문하시중은 현재의 총리에 해당하며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는 현재의 부총리에 해당된다 할 수 있다.

중서문하성의 재상들은 임금과 더불어 정사를 의논 처리했을 뿐 아니라 그 집행기관인 상서육부의 판사(判事)까지 겸임하여 국정 전반을 관장하는 지위에 있었다. 따라서 상서육부의 실질적 장관격인 상서(尙書)와 실질적 차관급인 시랑(侍郞)은 그 권한이 많이 위축되어 있었으나 고려 말기부터는 차츰 권한이 많아졌다. 집현전(集賢殿)은 학사(學士)들이 모여 경사(經史: 경서와 사기)를 강론하고 임금의 자문에 응하던 학문 연구기관이며 태학사(太學士)는 종2품으로 한림원(翰林院: 임금의 명령을 받아 문서를 꾸미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의 문한직(文翰職)이다. 문한직이란 과거 급제자만이 진출할 수 있는 문관직으로 그 중에서도 유학과 문자에 능통한 문사(文士: 글을 잘 지으며 글씨가 뛰어난 선비)만이 등용되었다. 이들은 문필(文筆: 글을 짓고 글씨를 쓰는 일)을 담당하였는데 고려 시대에는 예부(禮部), 국자감(國子監: 성균관을 예스럽게 부르는 말), 한림원(翰林院) 등이, 조선 시대에는 홍문관(弘文館), 예문관(藝文館), 규장각(奎章閣)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수국사(修國史)는 정사(政事)의 기록과 역사 편찬업무를 맡아본 종2품의 사관이며 판상서예부사(判尙書禮部事)는 상서육부 중 하나인 상서예부에 재상이 겸직하는 관직으로 종1품이다. 업무 성격상 상서육부의 상서(尙書: 정3품 벼슬)가 현재의 장관과 같은 직이나 상서육부에는 중서문하성 소속의 재상들이 6부의 각 상서(尙書)위에 판사라는 벼슬로 직무를 겸직하고 있어 상서(尙書)의 권한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상서육부가 독립성을 잃고 중서문하성에 예속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고려사절요에 고려 제29대 임금 충목왕(忠穆王)은 즉위년(1344) 윤 2월에 양천군(陽川君) 허백(伯)을 판전민도감사(判田民都監事)에 제수하고 (書筵)에서 서연시독(書筵侍讀)으로 강의하게 하였으며 10월에는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에 제수했다. 판밀직사사는 왕명의 출납 등을 관장하던 밀직사(密直司: 현재의 대통령 비서설)의 으뜸 벼슬로 품계는 종2품 관직이며 현재의 대통령 비서실장과 같은 위치이다. 또한 2년 후, 충목왕 3(1347)년 지공거(知貢擧: 과거시험관)가 되어 동료 지공거 이곡(李穀)과 함께 과거를 주관하였으며 고려 제30대 임금 충정왕(忠定王) 원년(1349) 10월 염제신(廉悌臣)과 함께 찬성사(贊成事)에 제배(除拜)되었다. 제배는 다른 신하들의 추천을 받지 않고 임금이 직접 벼슬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고려 제31대 임금 공민왕(恭愍王) 5(1356)년 7월 관제를 문종(文宗: 고려 제11대 임금) 때로 복구하면서 중서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中書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로 승진하였으나, 11월에 마산변란(馬山變亂)으로 대신들을 추방할 때 윤환(尹桓), 유탁(柳濯)등과 함께 유배되었다. 중서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는 정2품인 중서평장사와 종2품인 문하평장사를 겸임할 때 부르던 호칭이다. 고려사절요는 공의 사망 연월을 공민왕 6(1357)년 7월로 적고 있다. 배위는 진한국대부인(辰韓國大夫人) 동래정씨(東萊鄭氏)이다. 공은 시문(詩文)에도 뛰어나 공이 지은 시가 시문책에 다수 기재되어 있는데 전해지는 시 한 편을 소개한다.

금산사 〔金山寺〕
옛 사찰 산기슭에 기대 있고 古寺依山麓
높은 기와집 물가에 눌려 있네 高甍壓水涯
한기 도는 골짜기에 원숭이 달 보고 울고 谷寒猿叫月
침침한 솔숲 가지에 학은 둥지를 틀었어라 松暝鶴巢技
바람결에 종소리 멀리 울려 퍼지고 風引鐘聲遠
탑 그림자 물결 따라 출렁이네 波搖塔影移
이몸 한가함을 즐기는 성벽이기에 愛閒吾有癖
노승과 재회하기를 약속하였다네 更與老僧期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실려 있다.

글쓴이:   
번역:   
출처:   양천허씨대종회 60년사,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