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Portrait 11세 …
양천허씨  11세  / 고려시대

허관(冠)

행직:  판도좌랑(判圖佐郞) / 승봉랑(承議郞)

1. 프로파일

옛 족보는 남성을 먼저 기록하고 여성을 그 뒤에 태어난 순서대로 기록했습니다. 따라서 출생순서는 실제와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시대 : 고려 세수 : 11세 나이 : 미상(未詳)
성명(한글) : 허관 성명(한자) : 許冠
성별 : 생몰년(음력) : 미상 - 0000/10/27 출생순서 : 5/9 (순서/총자녀수)
호(號) : - 아버지 :
배우자 : 생몰년(음력) : 미상 - 미상 배우자 품계 : -
최초 등재족보명 :

2. 파명

대파명 중파명 소파명
판도좌랑공파(版圖佐郞公派) - -

3. 과거시험

과거급제 문과 자료는 정부기록물을, 무과와 잡과 그리고 소과 자료는 구 족보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과거(대과) : 문과 등수 : 1등 / 43명  (병과) 급제년도/왕조 : 1303년 / 충렬왕(고려) 과거종류 : 식년시

4. 관직 및 품계

관직과 품계는 행직의 경우 생전의 마지막 관직과 품계를 보여줍니다.

행직 행직
문/무관 : 문관 (고려)
관직(행직/수직) :  품계명(행직/수직) :  품계(행직/수직) :
관직(명예직) :  품계명(명예직) :  품계(명예직) :
행직(현대) : 사무관 명예직(현대) : 부총리

5. 나의 주소 및 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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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제목 : 11세 허관(冠) / 한글 번역문

고려 제25대 임금 충렬왕 묘정 배향공신인 문경공 허공(珙)의 셋째 아들이며 양천허씨 3개 대파(大派) 중 하나인 ‘판도좌랑공파’의 파조다.

공(珙)의 벼슬은 봉승랑(63)판도부 추봉(64)광정대부 첨의부찬성사 우문관 대제학 감춘추관사(奉承郞版圖部 追封匡靖大夫僉議府贊成事右文館大提學監春秋館事)이다. 판도부(版圖部-판도사)는 고려 후기 호구(戶口), 공부(貢賦) 등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청이며 광정대부는 종2품의 문관 품계로 금자광록대부가 충렬왕 1년 관제개편 때 광정대부로 변경된 것이다. 찬성사는 첨의부의 정2품 관직이며 우문관의 대제학 또한 정2품 관직이고 감춘추관사는 정사를 기록하는 춘추관의 관직이다.

공(公)의 모친은 정당문학(政堂文學) 윤극민(尹克敏)의 딸 영평군부인 파평윤씨(鈴平郡夫人坡平尹氏)이고 배위는 여산송씨(礪山宋氏)로 고려조의 명신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 송분(宋玢)의 따님이다. 정당문학은 국가행정을 총괄하던 중서문하성(조선 시대의 의정부)에 있는 종2품 관직이며 도첨의중찬 역시 중서문하성 관제 때의 종1품문하시중(현재의 수상 혹은 총리)과 같은 벼슬이다. 도첨의중찬은 고려 후기 충렬왕 1년에 원나라의 간섭으로 인해 고려의 관제를 축소할 때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을 통합하여 첨의부를 만들었는데 이때 문하시중의 호칭이 변경된 것이다. 정원은 좌·우 각 한 명이었다.

고려사에 의하면 나라 제도에 6품(六品) 이상의 관원은 과거시험에 응시함을 불허했는데, 단 6품 벼슬이더라도 사은(謝恩: 임금을 뵙고 은혜에 감사함을 표하는 일)하지 않았으면 과거에 응시할 수 있게 하였다. 공은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낭장(郞將: 정6품 무관직) 벼슬에 제수(除授)된 지 4년이 되도록 사은하지 않았다. 장인인 송분(宋玢)이 말하기를, “벼슬길이 많은데 어찌 반드시 과거에 응시하려고 하는가” 하니, 공은 선인(先人: 돌아가신 아버지)이 제게 유서(遺書: 유언을 적은 글)한 바 있는데 “꼭 과거에 응시하라” 하였습니다. 비록 제가 과거에 여러 차례 응시하여 급제하지 못하더라도 선인의 유서가 남아 있는데 어찌 제가 조급히 선인의 말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라고 대답했다.

임금이 평소에 허관(冠)의 이름을 들은지라 방방(放榜: 과거 합격자 명단)이 나오자 공(公)을 어전으로 불러 서대(犀帶)를 내려 주셨다. 서대는 벼슬아치가 허리에 두르던 띠인데 주로 물소의 뿔로 장식을 했다. 공의 벼슬이 호부산랑(戶部散郞: 호부에 속한 정6품 관직)에 이르렀고 사후(死後: 죽은 이후) 찬성사(贊成事: 첨의부의 정2품 관직)를 추증받았다. 고려 제25대 임금 충렬왕 29(1303)년에 박리(朴理)의 방(榜)에 병과(丙科) 제1인(一等)으로 급제하였으며 급제하여 5년이 지난 뒤 치사(致仕: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하였다. 고려 제27대 임금 충숙왕 3(1315)년에 공이 지은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진정시 〔陳情詩〕
허송세월 한지가 벌써 구년 虛送光陰已九年
우러러 임금 계신 곳 바라보니 마음은 망연하네 仰瞻楓禁意茫然
요행이 천재로 성군의 다스림 만났으니 幸逢千載垂衣理
큰 터전 도와서 만세에 전하려 하네 願輔丕基萬世傳

글쓴이:   
번역:   
출처:   양천허씨대종회 60년사,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