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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허씨  21세  / 조선시대

허희(喜)

1. 프로필

옛 족보는 남성을 먼저 기록하고 여성을 그 뒤에 태어난 순서대로 기록했습니다. 따라서 출생순서는 실제와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시대 : 조선 세수 : 21세 향년 : 36
성명(한글) : 허희 성명(한자) : 許喜
성별 : 남 생몰년(음력) : 1543/09/29 - 1579/10/13 출생순서 : 1/4 (순서/총자녀수)
호(號) : 학역재(學易齋) 자(字) : 치유(稚游) 아버지 :
최초 등재족보명 :

2. 파명

대파명 중파명 소파명
판도좌랑공파(版圖佐郞公派) 합천공파(陜川公派) 학역재공파(學易齋公派)

3. 과거시험

과거급제 문과 자료는 정부기록물을, 무과와 잡과 그리고 소과 자료는 구 족보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과거 : 과거(문과, 무과, 소과, 잡과)와 관련된 기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4. 관직 및 품계 / 봉작

역대 역임하신 관직과 품계, 봉작 이력입니다.

관직 및 품계 정보가 등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5. 장사(葬事) 및 묘소정보

묘소 정보는 구 족보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합장여부 : 각장
본인 : 허희(喜) 장례종류 : 매장 좌향(坐向) :
소재지(국가) : 주소 : 실전(失傳) 또는 소재지 정보가 없습니다.
나의 이야기

제목 : 21세 학역재 허희 / 한글 번역문

자는 치유(穉游)이며 호는 학역재(學易齋)이다. 전함사별제(典艦司別提) 서호처사(西湖處士) 허강(橿)의 세 아들 중 첫째 아들이고 어머니는 증 정경부인(贈貞敬夫人) 진주강씨(晋州姜氏)이며 배위는 전주이씨(全州李氏)와 안동권씨(安東權氏) 두 분이다.

공(公)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빼어나서 부친 송호공(松湖公) 허강(橿)이 심히 사랑해 “희(喜)”라 이름을 지었다. 공은 재주 또한 뛰어나서 당시 참판(현재의 차관)이던 이건(李健)은 “사윗감으로는 이 사람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 공을 사위로 삼았다. 그러나 재주가 지나침인지 불행하게도 명이 짧아 공은 37세에 별세했다. 막내 아우인 포천공(抱川公) 허교(喬)가 늘 탄식하기를 형님은 높은 기개와 호탕한 성품으로 효심이 깊고 주역(周易)을 즐겨 읽어 스스로 호를 ‘학역재’ 또는 ‘만역재’라 했는데 애처롭게도 술을 절제하지 못해 명을 다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씨 부인이 한 아들을 낳고 별세함에 권씨를 후배로 맞았으나 자녀가 없다. 전 부인과 쌍묘(雙墓)를 지어 연천 구곡(駒谷: 매지울)에 그리고 후 부인 묘는 광주의 권씨 족산에 있다. 아들 허면(冕)은 허익(翼)을 낳고 허익(翼)은 허전(戩)을 낳았는데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허전(戩)의 배위 박씨가 그 남편의 상을 잘 치러 정려(旌閭)가 세워졌다. 정려는 충신, 효자, 열녀 등에 대한 표상(본보기)의 상징으로 그 동네나 마을 입구에 세운 정문이다.

1999년 음 2월 14일에 허수길(壽吉)을 비롯한 후손들이 연천에 있던 묘를 충남 당진군 고대면 향곡리로 이장하여 세분을 합장하고 묘역에 석물과 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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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양천허씨 합천공파종사,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