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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허씨  22세  / 조선시대

허순(順)

1. 프로필

옛 족보는 남성을 먼저 기록하고 여성을 그 뒤에 태어난 순서대로 기록했습니다. 따라서 출생순서는 실제와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시대 : 조선 세수 : 22세 향년 : 46
성명(한글) : 허순 성명(한자) : 許順
성별 : 남 생몰년(음력) : 1625/03/11 - 1672/01/10 출생순서 : 7/8 (순서/총자녀수)
호(號) : - 자(字) : 길보(吉補) 아버지 :
최초 등재족보명 :

2. 파명

대파명 중파명 소파명
판도좌랑공파(版圖佐郞公派) 합천공파(陜川公派) 조산공파(朝散公派)

3. 과거시험

과거급제 문과 자료는 정부기록물을, 무과와 잡과 그리고 소과 자료는 구 족보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과거(대과) : 무과 등수 : 미상 / 미상 급제년도/왕조 : 1672년 / 현종(조선) 과거종류 : 별시

4. 관직 및 품계 / 봉작

역대 역임하신 관직과 품계, 봉작 이력입니다.

관직 및 품계 정보가 등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5. 장사(葬事) 및 묘소정보

묘소 정보는 구 족보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합장여부 : 각장
본인 : 허순(順) 장례종류 : 매장 좌향(坐向) :
소재지(국가) : 주소 : 실전(失傳) 또는 소재지 정보가 없습니다.
나의 이야기

제목 : 22세 조산공 허순(順) / 한글 번역문

공(公)의 이름은 허순(順)이며, 호는 조산(朝散)이다. 통훈대부 포천현감을 지낸 허교(喬)의 일곱째이자 막내아들이다. 현종 13년(1672년) 별시 무과에 급제하였다. 당시 조산공은 창원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는 둘째 형인 송화공 허의(懿)의 행적과 관련이 깊다. 앞서 송화공은 병자호란을 피하기 위해 어머니와 가솔을 이끌고 은거당의 장원(莊園)이 있던 경상남도 의령으로 이주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는 연천으로 돌아가지 않고 의령에 터를 잡았으며, 의령을 비롯해 창원·사천·칠원 지방의 별서(別墅)들을 관리하였다. 조산공 또한 둘째 형을 따라 창원에 터를 잡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조산공은 큰형인 미수공의 기력이 쇠약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뵙기 위해 창원에서 연천 은거당으로 향했다. 그러나 오랜 여정 탓에 병을 얻어 결국 연천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연유로 은거당 종손가에서는 종손가 소유의 산인 연천군 왕징면 강서리 산 204-1에 조산공의 묘를 모셨다. 이후 바로 윗형인 숙천공이 별세하자, 숙천공 역시 조산공의 묘역에 함께 안장되었다.

세월이 흘러 은거당 종손가는 이 묘역을 숙천공과 조산공 후손들에게 무상으로 이전해 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후 숙천공의 종손인 허00이 문중의 동의 없이 이 땅을 매각하고 말았다. 이에 따라 조산공의 후손들은 조산공의 묘를 그의 배위(配位·부인)가 잠들어 있는 창원의 선산으로 이장하기로 뜻을 모았다.

글쓴이:   허원무
번역:   
출처:   양천허씨 합천공파종사,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