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公)의 이름은 강(橿)이요 자는 사아(士牙)이며 성은 허씨다. 가락국이 망함에 허씨가 사방에 분산하니 지금 양천허씨도 그 중의 하나다.
양천허씨의 17세 합천군수, 증 좌찬성 훈(薰)은 공의 증조요, 조부는 원(瑗)이니 의영고령이요, 증 영의정이신 부친 자(磁)는 중종, 인종, 명종 삼조의 재상이요, 모친은 정경부인 이씨니 양령대군의 증손녀라. 공은 동서고금의 책을 많이 읽고 잘 기억하며 고결함을 좋아했는데 이것으로써 출세함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문정왕후(文定王后) 시절 이기(李芑)가 집정할 때 조야(朝野: 조정에 있는 사람들과 민간 사람들)가 눈 흘겨보았다. 부친 자(磁)가 을사사화(乙巳士禍: 조선 13대 임금인 명종 즉위년에 일어난 사화, 대윤의 거두 윤임 일파를 몰아내는 과정에서 대윤파에 가담했던 사림이 크게 화를 입었다.)와 관련하여 형벌이 항상 남용되매 무죄한 사람 다수가 연좌되어 사형을 당하였으므로 이기를 소추(訴追: 고급 공무원의 직무남용을 탄핵하는 일)하였다. 이에 이기가 심히 노하고 거짓말로서 “허자는 공신으로 조언(造言: 거짓말)하며 비방한다”하여 마침내 공을 북방에 귀양 보낸 후 끝내 죽일 생각이었으나 이기(李芑)가 먼저 죽음으로서 화를 면했다.
그러나 부친 자(磁)가 마침내 홍원 귀양지에서 별세하니, 공이 거상할 때 죽을 마시는 한편 너무 슬퍼하여 몸이 쇠약해지니 생명을 보전키 어려웠다. 2년 후 조정에서 공이 행한 품행이 방정하고 탁월했었다는 것을 알고 전함사별제를 제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고, 홀로 40년동안 강호를 방랑하며 그 자취만을 남겼다. 자호를 『서호처사』라 하였다. 후일 퇴계 이황 선생이 읊은 시에도 공의 행실이 잘 나타나 있다. 임진왜란 때 협북으로 피란하였다가 토산 수인에서 별세하니 연천에 장사하였다. 공(公)은 제11대 임금 중종 15년 2월 26일에 탄생하여, 제14대 임금 선조 25년 11월 2일에 별세하니 향년 73세이다.
공이 세상 친우들을 물리치고 매일 늙도록 고인들의 글을 탐독하는 한편 부친 자(磁)가 역대 역사책을 편제하다가 이루지 못하고 별세하였음으로 이것을 계속하여 완성하니 책이 무려 30권이다. 배위는 진주강씨(晋州姜氏)로 우의정 강귀손(姜龜孫)의 증손녀요 문경공 김안국(金安國)의 외손녀다. 공이 별세한 후 11년 뒤에 별세하니 수가 81세이다.
장자 희(喜)는 면(冕)을 낳고 면(冕)은 익(翼)을 낳고 익(翼)은 전(戩)을 낳으니 모두 조몰하여 무자하고 차녀는 종실(宗室: 왕의 친족으로 종친이라고도 함) 춘성정(春城正) 위(偉)에 출가하여 무자(자식이 없음)하고 차자 량(亮)은 진사인데 후(厚)를 낳고 조졸했으나 사헌부(현재의 검찰청) 장령(사헌부의 정4품 관직으로 정원은 두 명)이요. 후(厚)가 식(翨)를 낳고 그 사위 둘이 있으니 신난(申暖)과 송유징(宋孺徵)이다. 작은 아들 교(喬)는 포천현감이니 아들 목(穆)과 의(懿)와 서(舒)를 두었다. 목(穆)은 사헌부 장령이며 의(懿)는 송화현감이요 서(舒)는 영월군수이다. 목(穆)이 훤(翧), 함(𦑘), 도(翿)를 두고, 두 사위는 윤승의와 정기윤이요, 서(舒)는 공(𦏼), 충(翀), 호(䎁),숙(䎘)을 두고 딸 하나는 심근에게 출가하고 하나는 미성(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 또는 성년이 아직 안된 사람)이라 3·4세에 이르러 자손이 40여명이 되었다.
공의 시 한 수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회포를 부치다 〔寓懷〕
우뚝한 송당(松堂) 푸른 물가를 굽어보는데 磊落松堂俯碧灣
고요한 가운데 상대하는 것은 구름낀 산 뿐이라오 靜中相對只雲山
백구(白鷗)가 어찌 때를 잊는 물건이랴 白鷗豈是忘機物
온종일 물고기를 엿보며 잠시도 한가하지 않다네 盡曰窺魚不暫閒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이 말 하기를 일찍이 동애(東厓) 허상공(相公: 재상을 높여 부르는 말)의 아들이 그 뜻과 행실이 높다는 것을 듣고 그의 시(詩)를 정성드려 읽어보았는데 그 문장이 맑고 아담함을 감탄한 나머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
회포를 부치다 〔次韻〕 - 이황(李滉)
사람은 떠나가고 집은 비었는데 옥만(玉灣)을 둘렀으나 人去堂空帶玉灣
현자를 생각하는 아름다운 시구 강산을 생각하게 하네 思賢佳句想江山
조상의 유풍도 다 본 받지 못하였으니 典刑不受東華沒
어찌 지금 속세를 떠났다고 한가로울소냐 肯負當年物外閑
글쓴이: 허목(穆)
번역:
출처: 양천허씨 합천공파종사, 2015년